절실함과 절박함을 간사하게 악용하는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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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절실함과 절박함을 간사하게 악용하는 집회 미증유한 코로나19 사태…우리 모두 조금 더 현명할 필요 있다

기사입력2021-09-17 12:31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불법집회 주도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7월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서울 종로에서 8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자 대회를 열었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유무죄를 떠나 지금 시대 사람들의 모임, 흔히 집회에 대해 언급해볼까 한다.

집회 본질은 절박함이다. 1980년대 군부독재 당시 열린 집회의 근저는 민주주의였고, 자유였으며, 또 평등과 통일이란 간절함이 깔려 있었다. 1987년 6월 집회의 큰 물줄기는 민주항쟁으로 일단락됐다. 이후 그 물줄기는 노동계로 교육계로,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1990년 우리 사회에는 분명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군사독재는 종식되고, 민주주의의 흐름은 도도하게 국민 의식에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그에 맞춰 나라는 부흥기에 접어들었다(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는 국민 상당수가 그러게 믿고 살았다). 복잡한 세상에 집회는 더 다양해졌다. 그동안 사회가 애써 외면한 부조리와 불평등, 정의롭지 못한 많은 장애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아니 오히려 더 호되게 사회 곳곳을 손질했다.

지구촌은 대한민국을 경제와 민주주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유일한 나라라고 호평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우리 사회는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 됐다. 반 백년 격동의 세월을 보낸 국민은 보답이라 여기며 그 평을 달게 받았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전염병은 2년 가까이 일상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사회는 사람이 무리를 지어 사는 곳이다. 전염병은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카라비너를 툭툭 끊어 개개인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소상공인이 그렇고, 현장 노동자가 그렇다. 그뿐이겠나.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혹독한 세상을 보내냐”라고 묻고 싶은 심정일 게다.

나라가 전염병 방역 차원에서 집합을 금지했지만 그들은 수많은 비난과 비판에도 모였다. 고해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고해란 가톨릭계 용어다. 세례 받은 신자가 자신의 죄를 신부에게 고백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곧 신에게 그 죄를 용서 받는 행위다. 용서라 함은 괴로움이나 고통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도 담겼다. 불교계에서는 정반대의 의미다. 고해란 고통스럽고 괴로움이 끝이 없는 인간 세상을 말한다.

전염병 시대, 인간세상은 분명 불교계가 규정하는 고해와 가까울 것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힘듦과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헤게모니나 이데올로기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럼에도 최근 일부의 집회 현장 한 구석에 자리한 풍경은 씁쓸함과 분노를 자아낸다. 정치가 있고, 종교가 있고, 이기주의가 그 절박함을 아주 간사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방역마저 지키지 못할 만큼 절박한 그들의 심정을 간사함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더 현명해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갈래갈래 찢겨진 목소리를 하나로 모이게 하는 것은 생존권이다. 대의가 하나하나 모여 다수 견해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정치나 종교가 우리 생존권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지키고 수단으로 활용해온 것이 정치이고 종교다. 전염병 시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집회, 누구라도 그들을 탓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절박하고 절실함을 대신해 정치적, 종교적 행위가 도드라지면 시민은 말할 것이다. “너희만을 위한 굿을 당장 멈추라”고.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