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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타임 논쟁부터 주4일제까지 ‘쉼’의 변천사
‘근로-휴식-여가’의 역사를 쫓다…G밸리산업박물관 ‘파랗고 푸른 숨’
- 기사입력2025-08-06 13:33
김범규 기자 (bgk7@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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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대한광학에서 제작한 국내 기술 기반의 최초 35mm 수동 필름 카메라. ‘쉼’의 개념이 본격화하던 이 시기, 근로자들은 동료와 함께 취미를 공유하며 활력을 되찾았다. ©중기이코노미“서양의 몇몇 선진국가들 중엔 일주일 중 이틀은 휴무일로 하는 꿈 같은(?) 나라들도 더러 있다고 하지만(중략) 스트레스 해소니, 권태스럽다느니 하는 말들이 우리들 귓가에 유행어처럼 심어져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진정 생활을 아는 직장인은 땀을 뻘뻘 흘리고 직장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속에서 더욱 큰 보람을 찾는다. 직장에 보람을 느끼는 사원이라면 토요일 반납이라는 타이틀을 토론의 광장에 동원시킨 것만도 불쾌해 할 것이다. 그들은 토요일의 D데이를 직장의 사무실 책상 위에서 찾고 있지, 결코 플라터너스가 유적한 가로수 길에서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토요일은 일찍 끝난다는 해방감 내지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날이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걸려온 전화에 ‘미안해, 우린 토요일도 정상근무야’라는 말을 할 때 친구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실망과 원망의 소리, 그리고 더불어 손상되는 회사 이미지란(중략) 직장인들에게 피로 회복은 일의 능률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모 부서에서 획기적인 도약을 위하여 스스로 시작한 이 토요일 오후 반납 운동이 과연 시작 당시만큼 자발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중략) 사원들의 사기를 무시할 만큼 큰 건지 한 번쯤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1978년 대한전선 사보 6월호에 실린 글의 일부다. ‘토요일 오후 근무’를 두고 두 직원이 팽팽한 의견 대립을 하고 있는데, 주 5일 근무가 당연한 지금과 달리, ‘토요일 오전 근무’를 쟁취하는 것만으로도 직원의 복지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이렇듯 휴일, 휴가는 노동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G밸리산업박물관에서 중기이코노미 기자와 만난 오윤정 학예연구사와 이수연 연구원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직장인의 휴가와 여가 문화를 조명해 보자는 뜻에서 특별기획전 ‘파랗고 푸른 숨’을 기획했다”며, “일 년 중 가장 긴 시간을 낼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인 여름휴가가 어느 순간 한 번에 생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예전 직장인들은 휴가를 얼마나 보장받았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했다”고 전시 배경을 설명했다.회사가 삶의 8할인 시절…휴식은 ‘사치’ vs ‘재충전’산업화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1960년대에 근로자는 ‘일하러 온 사람’에 불과했다. 공식적으로 잡힌 통계만 보더라도 주당 근로시간이 54시간이 넘었을 정도로 노동이 반복되던 열악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휴식’에 대한 궁금증과 어떻게 사회와 기업에 요구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오윤정 학예연구사는 “이런 목소리가 쌓이면서 국가와 기업이 휴식에 대한 개념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며, “사람들에게 단순히 일만 계속 시키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원활하게 근로 하기 위해 휴식시간을 어느 정도 보장해 줘야 하고, 그에 맞는 복지제도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시기다. 근로자를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한 사람으로 대하려는 회사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지금과 같은 휴식·휴일 문화는 1970년대 대기업을 필두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LG전자의 전신인 금성통신에서는 매월 생일자를 한데 모아 잔치를 열어주고, 수저 세트를 선물로 증정하기도 했다. 또한, 직원 전용 리조트를 마련해 휴가철 성수기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직장인 동호회 활동을 지원하는 회사도 있었다.하지만, 여전히 ‘인권’보다 ‘비용 효율화’가 더 강조되던 시절임을 보여주는 자료도 있다. 1978년 ‘커피 타임’을 근로시간 중에 허용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대한전선 직원들의 상반된 시각이 대표적이다.반복되는 노동 속에도 ‘해방의 날’은 온다
종이카드에 시간이 입력되는 전자식 출퇴근 기록기와 종근당의 미니건강문고 세트 ©중기이코노미“자극성이 강한 줄 알면서 중독(?) 여부를 무시하고 멍청하게 마셔대는, 개중엔 블랙커피라나 순수체질을 외면하는 모방형도 더러 있지만. (중략) 인체에 좋을 거 없고, 알량한 한 모금에 경비낭비가 그렇고, 시간 낭비를 줄 수 있는 자체만으로도 지양해야 되지 않을까. 게다가 피치 못할 방문객과의 커피한잔이 엉뚱한 오해를 받을지 모르겠고. 꼭 필요한 경우 값싸고 우리 몸에도 좋은 국산차를 활용한다면 우리네 분수에 맞는 바람직한 멋이 될 것이다.”“수삼년 전만 해도 커피를 마시는 일은 서양 사람들이 두꺼운 비갯살을 빼기 위한 한가로운 짓이라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였지만, 동서가 공존하는 오늘날에야 사교적인 측면에서 또는 문화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이의 존재 가치를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음은(중략) 휴식을 즐기고 식도락도 하고 당분섭취로 체내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고…”이렇듯 꽤 강한 어조로 커피타임에 대한 찬반 논쟁이 펼쳐졌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커피타임을 반대하는 시각의 이면에는 ‘회사 비용을 아끼자’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또한, 비즈니스로 인한 커피타임이라 하더라도 자칫 제삼자에게 ‘오해의 시선’을 받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 등 보수적인 시대상도 엿볼 수 있다.높은 노동강도의 위험성을 경고한 자료도 있다. 오전 8시30분부터 밤 9시30분까지 일할 정도로 노동강도가 높았던 1970년대였지만, ‘산업 피로’에 대한 개념도 동시에 퍼져나갔던 시기이기도 하다. 피로의 원인과 판정 기준, 예방법 등을 안내한 종근당의 ‘미니건강문고’ 세트를 보면 피로와 휴식의 상관관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던 때라는 걸 알 수 있다.으샤으샤! ‘인천바다 고기는 다 내 것(인고내!)’
야유회, 동호회, 생일 축하 잔치 등 근로자와의 결속력을 돈독히 하던 1970~1980년대를 엿볼 수 있다. 신박한 축약어와 기념 수건 등 당시 직장인들은 여가 활동에 진지했다. ©중기이코노미‘쉼’의 본격화…동호회·야유회·혼여의 즐거움까지1980년대부터 1990년대 직장인은 ‘쉼’을 찾아 적극적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시작한 직장 내 동호회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바캉스를 떠난 직원이 사보 콘테스트에 출품하는 등 개인의 감정과 일상을 여과 없이, 그러나 진지하게 표현했다.또한, 당시에는 직원과의 단합과 연대를 위해 야유회를 떠나는 기업이 많았다. 평균 주당 근로시간이 55시간이 넘고, 연차 사용통계도 없을 정도로 ‘업무’에만 집중했던 고성장 시절인 만큼 ‘야유회’가 직장인들의 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국내 기업의 야유회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시각도 있었다.“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상사들은 고스톱 판을 벌이며 직급 낮은 사원들이 밥을 갖다 바치는 것이 당연하다는 당당한 논리에 저으기 실망을 느꼈다.”1986년 모 기업의 기획실 조사과 직원이 ‘야유회 때문에 더욱 지쳐서야’라는 제목으로 사보에 실은 칼럼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직장 내 서열로 힘든 저연차 직원들의 비애를 적은 글로, 이런 문화를 개선해야 하고, 조직이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근로자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찰칵! 한 장의 사진에 ‘영혼’을 담아
백양 사보와 섬유저널 창간호에 실린 ‘바캉스 사진 콘테스트’와 취미 사진을 공유한 모습. 사진 구도가 요즘 SNS에 업로드되는 사진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힙’하다. 아래는 1990년 8월 럭키금성 사보에 실린 ‘일기를 쓰자’라는 의료진의 칼럼. 일기를 쓰는 행위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다. ©중기이코노미
섬유, 봉제, 가발 등 경공업이 주를 이루던 1970~1980년대에는 지방에서 상경한 여성 근로자를 위해 유급 휴가, 귀향 버스, 특별 보너스 등을 제공했는데, 버스를 대절해 명절 귀향길을 동료와 함께 떠나며 설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중기이코노미
혼여(혼자 여행)의 즐거움을 설파한 근로자와 금성 에코밴드 카세트테이프와 가사집 ©중기이코노미당시 가족과의 휴식 타임도 눈에 띈다. 전축 세트 앞에 네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모여 음악을 듣는 풍경이 이색적이다.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이선수(40대) 씨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전시를 보며 내가 어렸을 때와 지금의 근로환경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며, “지금은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휴가를 떠나도 휴가지에서는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따로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무조건 사람끼리 모였던 것을 보면서 개인보다는 집단에 더 집중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그런가 하면, ‘혼여(혼자 여행)’의 즐거움을 설파한 사례도 있다. 금성사 평택공장 홍보팀의 한 직원은 사보를 통해 “신세대의 상징, 작은 배낭 짊어진 채 무작정 떠났던 혼자만의 여행! 아무도 없는 빈자리를 지키며 나는 고독해 했었고, 그때 여행지에서의 쓸쓸했던 내 모습은 아직도 기억 속에 살아 있다”고 말하며 ‘혼여’의 즐거움을 공유했다.일상에 지친 마음, 소리로 풀어요
이번 전시는 시각예술가 그룹인 ‘사운드울프’의 음악을 공간적으로 활용했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의 모습을 청각적으로 풀어내고, 녹지대가 부족한 G밸리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내적 변화를 표현했다. 일기 쓸 때 사각대는 연필 소리, 사진을 찍을 때 찰칵대는 소리, 가족이 웃는 소리 등 다양한 힐링의 순간도 소리로 들을 수 있다. ©중기이코노미
이 공간을 나서면 다시 업무로 돌아가야 하는 근로자를 위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놨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인 40%는 휴가 때도 업무 관련 연락을 받는다. ©중기이코노미오윤정 학예연구사와 이수연 연구원은 “전시를 통해 근로-휴식-여가의 인식 변화와 상관관계를 선보여 선순환적 근로환경 조성을 위한 인식을 마련하고자 했다”며, “2020년도부터 3개년 통계에 따르면, 10명 중 4명은 휴가 중에 업무 관련 연락을 받는다. 이 말은 아직도 온전히 휴식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이런 것도 차차 앞으로 개선해야 할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이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방향에 대한 질문거리를 던져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이어 이번 전시를 통해 바쁜 일상에서 ‘쉼’의 즐거움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도 전했다. 전시는 오는 10월 18일까지 G밸리산업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그들은 “전시장 가운데에 시각예술가 차지량 작가의 ‘내세’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작가가 직접 전라남도에 위치한 내세 마을에 3개월간 머물면서 여름의 모습을 촬영한 것을 30분 길이로 편집한 것”이라며, “비록 이곳이 지식산업센터로 둘러싸인 곳이지만, 이곳에 앉아 작품을 감상하면서 차분한 감정을 느끼고 가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